바가지

이른 아침 햇살이 비치는 깨끗한 표면은 무언가를 더 만들어내라는 초대장이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가만히 알아차리게 하는 부드러운 신호입니다.

PURPOSE

8/4/20261 분 읽기

또 다른 시골집 바가지

한국 고유의 귓 떨어진 바기지

담을 알기에 비울 압니다.
비울 알기에 다시 담을 압니다.”

사랑과 존경을 받던 스님의 구절을 나는 오래도록 마음에 품어 왔다. 안에는 삶의 이치가 고요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은 언젠가 사라지고, 것은 다시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 또한 하나의 바가지와 같지 않은가.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담느냐, 그리고 어떻게 비우느냐이다. 맑은 계곡의 약수를 담을 것인가, 아니면 구정물을 담을 것인가. 그것을 이웃과 나누며 마실 것인가, 아니면 혼자 움켜쥐고 마를 때까지 지킬 것인가.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부부가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고, 특히 아내는 물욕이 강하여 없이 돈을 모았다. 세월이 흐르며 그들은 고급 주택과 값비싼 자동차를 소유하게 되었고, 뉴욕 번화가의 상가까지 장만하며 이민 1세대로서 성공한 삶을 이루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져본 뒤에 찾아오는 것은 뜻밖에도 권태였던 것일까. 오랜만에 들려온 소식은 아내가 도박장에 드나들며 빚을 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쌓아 올린 것들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남편을 생각할 때마다 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해방 직후, 여섯 어린 나이에 부모와 함께 38선을 넘다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는 다시 북으로 돌아가며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만나자 약속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소년은 저녁마다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부모를 기다렸다. 달이 지나고, 년이 흘러도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다림과 상실이 그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단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심리학에서는 어린 시절의 애정 결핍이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구로 나타날 있다고 말한다. 채워지지 못한 사랑이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사랑을 대신할 무언가를 평생 담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안타까운 것은 부부가담는 알았지만비우는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인생은 스스로 비우지 않으면, 타의에 의해 비워지게 마련이다.

담고 비우며 살아갈 , 삶은 비로소 균형을 이룬다. 젊은 시절에는 담는 분주했다면, 이제는 비우는 기쁨도 배워야 한다. 때로는 내가 담은 것이 맑은 물이 아니라 흐린 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워야만 다시 맑은 것을 담을 있다.

생각해 보면, 비운다는 것은 잃는 일이 아니라 다시 얻는 일이다. 비우고 나면 , 스무 배로 돌아오는 것이 삶의 신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