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짝궁에게서 무엇을 배우는가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시대에, 개인적인 성찰을 내밀하게 간직하는 것은 드물면서도 지속적인 평온함을 선사합니다.

FRIENDSHIP

8/4/20261 분 읽기

임건식 선생.
우리는 서로를 짝궁이라 불렀다. 같은 이사 나란히 늙어가며 어느새 년을 함께 보냈다. 동갑내기처럼 웃고 걷고 밥을 먹다 보니, 그는 어느새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가 되어 있었다. 작년 삼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나는 말없이 무너졌다. 매일 아침 여덟 , 다이찌 운동을 하고 19 식당에서 나누던 조용한 조반의 풍경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사람은 슬픔 앞에서 쉽게 늙는다. 아내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환경을 바꾸면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질 있지 않겠느냐고. 우리는 계단이 있던 이층집을 정리하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타워형 집으로 옮겼다. 다섯 , 햇빛이 깊이 들어오고 방마다 한쪽 벽은 유리로 되어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순간, 눈앞에 펼쳐진 파노라마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삶은 아직 이렇게 빛을 품고 있었다.

작년 칠월 첫날, 우리는 새집에서 첫밤을 보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열흘도 지나지 않아 손주들의 여름방학을 함께 보내기 위해 아들 집으로 향했다. ,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뜻밖에도 짝궁을 떠올렸다. 그리고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어날 즈음,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앤디 부시.
그는 나의 다른 짝궁이다.

그는 서양인이고, 나는 동양인이다. 그는 나보다 여섯 아래이고, 키는 머리 크다. 멀리서 보면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걷는 모습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는 2021 가을, 아리소 크리크 공원에서 아침 산책을 하다 처음 만났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듯한 순간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베이커스필드에서 성공한 회계사였고, 나는 심리학자로 살았다고 말했다. 그날,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인생을 꺼내놓기 시작했고, 나는 묻지 않고 들었다. 사람의 이야기는 때로 질문 없이도 충분히 흐른다.

그날 이후 우리는 매주 화요일 아침, 같은 길을 걷는다. 아리소 크리크를 바퀴 도는 산책은 어느새 다섯 해가 되었다. 계절이 바뀌고 나무가 자라고, 우리의 우정도 그렇게 쌓여 왔다.

앤디는 나를 롤모델이라 부른다. 나이가 되면 나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너는 이미 나보다 깊은 사람이야.”
그리고 속으로 덧붙인다. 나는 그를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마음이 익어 있음을 느낀다.

그는 예의와 친절이 몸에 사람이다. 아픈 친구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외롭게 사는 상이군인 노인을 해째 매주 찾아간다. 교회에서 재정이나 보험 문제로 어려움이 생기면, 밤을 아끼지 않고 돕는다. 봉사는 그에게 선택이 아니라 삶의 태도다.

그는 불갈비를 좋아한다. 내가 한국 식당으로 데려가면, 다음번엔 반드시 자신이 라구나 비치의 식당으로 초대한다. 차례를 건너뛰는 법이 없다. 내가 이사 오며 거리가 조금 멀어졌지만, 그는 매주 화요일 아침마다 나를 찾아온다. 산책이 끝나면 우리는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오늘은 내가 차례야.”
그는 단호하다. 미국식 친절은 때로 고집스럽다.

번은 내가 약속 시간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는 로비에서 한참을 기다린 전화를 걸었다. 나는 숨이 차도록 뛰어 내려갔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미소로 나를 맞았다. 얼굴 앞에서 나는 알았다. 인내는 참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그는 영적인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경건한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성경을 읽은 뒤, 묵상집 『데일리 워드(Daily Word)』를 편다. 인내, 용기, 지혜, 사랑, 연민…. 그 책에 담긴 메시지들을 마음에 새기고, 친구와 지인, 그리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그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의 삶에는 깊은 골짜기가 있었다. 한창 일에 몰두하던 시절, 아내는 쪽지 장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일곱 딸과 아이를 남겨둔 채였다. 남겨진 아버지의 마음은 우물 같았을 것이다. 소리는 메아리 없이 사라지고, 위를 올려다보면 반쪽 달만 보이는 고독. 그는 시간을 원망으로 채우지 않았다. 동안 싱글 아버지로 딸을 키우며, 그는 질문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미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이후에도 시련은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은퇴 찾아온 스트로크, 사라진 기억들. 그러나 기적처럼 그는 다시 돌아왔다. 기억은 되살아났고, 그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후로도 그는 오래도록 봉사의 자리를 지켰다.

나는 가끔치유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그에게 건넨다. 그는 글을 소중히 간직한다. 이제 그는 나의 짝궁이며, 나의 거울이고, 나의 롤모델이다. 그가 나를 닮고 싶다 말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기도한다.
좋은 사람을, 부디 오래 곁에 두게 해달라고.
번째 짝궁을 떠나보내는 이별만은, 아직은 감당하고 싶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