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대 – 이민 2세대 아버지
아버지로서의 삶, 그 세대에 걸친 성찰
8/7/20261 분 읽기
세 살배기 막내 손녀는 작은 공 하나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온몸에 가득했다. 공을 품에 꼭 안은 채 소파 구석에 몸을 접어 넣고, 마치 거북이 새끼처럼 등을 둥글게 말아 숨었다. 여섯 살 오빠는 처음엔 힘으로 해결해보려 했지만, 끝내 버티는 동생 앞에서 포기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아이들이 잠시 멈추자, 방 안의 공기가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그때 손녀가 고개를 슬며시 들어 나와 눈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Grand Pa, 나 이겼어.” 속삭임 같지만, 아이의 작은 세상에선 충분히 큰 승리였다.
아들에게 손주가 생긴 뒤로, 우리 부부는 매년 여름과 겨울이면 동부로 떠났다. 특히 아내는 아들과 며느리를 돕고 손주들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어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유아 지능 발달을 평생 연구했던 스위스의 장 피아제(Jean Piaget) 박사는 자기 자녀들을 나 면서 부터 관찰하며 기록했다. 삶을 연구로, 연구를 삶으로 이어붙인 학자였다. 하지만 내가 아들의 집에서 바라보는 관심은 그런 학문적 열정과는 다르다.
내 질문은 단 한 가지였다.
‘내 아들은 어떤 아버지인가?’
한국에서 나고 자라 이민 1세대로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린 나는, 한국식 아버지였고 동시에 변화를 받아들인 아버지였다. 그런 내가 기른 2세의 아들은, 또 어떤 방식으로 3세 아이들을 키우고 있을까.
세대가 바뀌면 사랑의 방식도 변하고, 책임의 무게도 달라진다.
같은 가정 안에서도 ‘아버지’라는 이름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가질 것이다.
아들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컸다. 결혼 후 오래도록 기다리던 아이는 10년후 어느 날 쌍둥이로 찾아왔다. 기쁨과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왔고, 임신 중 큰 어려움을 겪은 며느리는 결국 7개월 만에 수술을 통해 아이들을 품에서 떼어내야 했다. 미숙아였던 만큼 아들과 며느리는 온 마음과 시간을 보태며 돌보았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배웠다.
2세 아버지는 1세였던 나보다 더 인내하고, 더 성실하게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들은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들과 놀아주고, 책을 읽고, 기타를 튕겨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쌍둥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또 한 번의 새 생명이 찾아왔다. 이번 임신과 출산은 조금 더 순탄했지만, 육아란 언제나 예상 밖의 긴장과 기쁨이 섞여 있는 법이다. 막내는 이유 없이 울곤 하고, 아버지가 출장 가는 날이면 몸과 마음을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제 쌍둥이는 여섯 살, 막내는 세 살.
집 안은 아이들의 숨결로 살아 있고, 저녁이면 춤과 피아노, 그리고 막둥이의 따라 하기 놀이가 이어진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아이들은 어느새 제법 자기 자리를 만든 듯 씩씩해졌다.
어제는 딸아이가 감기로 집에 남아 있었고, 학교를 마치고 들어온 오빠는 “점심시간에 내가 너 많이 찾았어.”라고 말하며 동생을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 장면은 가볍지 않은 울림을 남겼다. 그때 여식은 답했다 “I am sorry I was not there,”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들과 며느리는 참 좋은 부모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이민 1세대로서 고국의 아버지들보다 조금 더 열린 마음을 배우며 아들을 길렀다. 그리고 이제 내 아들은 그보다 더 넉넉한 시간을 아이들에게 건네며 아내를 도우며 자녀들을 이끌고 있다.
세대를 건너며 ‘아버지’라는 존재는 변해왔다.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깊어지고,
조금 더 따뜻해졌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우리 집안의 아버지들은 완벽하진 않아도,
세월을 통해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왔다는 것을.
그 사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살아온 시간들이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