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라는 병
그리움에 대한 단상.
Dr. Young B. Lee
8/4/20261 분 읽기
3월 9일은 친구 임건식 선생님의 일주기다.
그분의 어진 성품과 잔잔한 미소를 우리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이 글이 홀로 남으신 임정순 사모님께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선생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 「이 몸이 새라면」이라는 시를 남기셨다. 깊고도 애잔한 시였다. 그 시의 한 대목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내 몸이 아프다
그래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치료할 수 없는 병이 하나 있다
내 마음 깊은 곳 그리움이란 병이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만 절로 난다.
손에 잡힐 듯 눈 아래 작은 마을이 보이고,
부르면 누나가 웃으며 손짓하고 나올 것만 같은 곳—
인삼의 명산지, 아름다운 강산, 내 고향 개성이다.
거기 나의 어린 시절 무덤을 두고 왔다.
이 몸이 새라면
저 건너 보이는 나뭇가지에 앉아 볼 텐데.
언제나 내 고향에 갈까.
고향을 떠난 지 어느덧 70년.
이국의 하늘 아래서
“누나야” 하고 불러 보아도
허공만을 맴도는 안타까움뿐이다.
선생님은 이 외로움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사셨다.
아마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남이 모르는 아픔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Bio 모임 3주년 기념 행사 때의 일이 떠오른다. 그날 선생님은 「가고파」를 부르셨다. 우리는 큰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의 목소리 속에서 미묘한 떨림을 들었다.
그 떨림은 단순한 노래의 기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분의 삶 자체였다.
열일곱 소년이 “나흘 후면 돌아오리라”고 생각하며 떠났던 그 이별,
그러나 끝나지 않은 70년의 기다림,
누님에 대한 그리움,
아내에 대한 책임,
끝까지 놓지 못한 사랑….
그 모든 것이 한 음의 울림 속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눈물이 났다.
돌이켜 보면 임건식 선생님은 고칠 수 없는 외로움의 병을 노래로 껴안고 사셨다. 노래는 그에게 위로가 되었고, 희망이 되었으며, 결국 그의 삶이 되었다.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남긴 조용한 유산이다.
우리에게도 질병이 있을 수 있다.
상실이 있을 수 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끝은 아니다.
그 아픔은 노래가 될 수 있고, 기도가 될 수 있으며, 사랑이 될 수 있다.
어쩌면 그리움이란 병이 아니라 사랑이 깊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임건식 선생님의 몸은 떠났지만 그분의 사랑은 아직 Bio 모임 안에 남아 있다. 그분의 시는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모습만 바뀔 뿐이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노래를 기억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던 그 노래를.
그것은 약함이 아니었다.
그리움이었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사라지지 않는 사랑이었다.
그분이 노래할 때,
그분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듣던 우리도 잠시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추념 예배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떨리는 목소리를
그것은
약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움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당신이 노래할 때
당신은 집으로 돌아오셨고
당신이 노래할 때
우리 모두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