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라

김용택의 ‘나무’에 대한 단상

Dr. Young B. Lee

8/4/20261 분 읽기

김용택 선생님은 섬진강 작은 마을 장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평생을 살며 늙어 갔다. 그는 햇살이 비치는 강을 바라보고, 햇빛에 나부끼는 나뭇잎을 마주하며 시를 썼다. 김용택 시인의 삶에는 언제나 나무가 있었다. 흐르는 강물과 푸른 숲속은 그의 시가 태어난 고향이었다.

그분의 시집 《나무》를 읽으며 나는 오래 잊고 지낸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바람과 , 겨울과 새소리 속에서 길어 올린 그의 맑은 시들은 샘물처럼 신선한 자연의 소리가 되어 내게 찾아왔다. 시를 읽는 동안, 마치 오래전 잊어버린 고향 길로 다시 발길을 돌린 듯한 평온함을 느꼈다.

시인은 강을 따라 길을 걸으며 초등학교를 다녔다. 억새풀을 헤쳐 가며,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은 일곱 어린아이의 다리에는 여간 부담스러운 아니었다. 그러나 따스한 햇볕을 쬐고 스쳐 가는 바람을 느끼는 사이, 자연 속에서 그의 감수성과 예술적 감각도 함께 자라났다. 그는 길을 여섯 동안 걸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다시 서른한 해를 걸었다.

많은 시인이 도회지로, 서울로 모여들었지만 그는 외딴 마을에 남아 꽃과 나무를 보고 사랑을 읊으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이루어 갔다. “자연을 받아 적으면 그것이 행복한 삶이 되며 시가 되고 예술이 된다.” 이것은 그가 남긴 말이다.

강물은 흘러도 해는 강을 건너고 앞산이 높아도 햇살은 앞산을 넘어가는데 건너 건너 넘어간 앞산에 피는 꽃이 지금 피는 꽃이냐 지는 꽃이냐 산비탈의 붉디붉은 산복숭아꽃아 아내는 잠에서 깨어나 인적 없는 저문 강으로 저문 산을 잡으러 가네 혼자서 가네

시인은 스물일곱 되던 , 동네 입구에 느티나무 그루를 심었다. 나무는 어느새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나 장승처럼 우뚝 , 사계절 내내 마을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동네가 풍요롭게 느껴지는 것은 나무 덕분일 것이다. 시인은 아이들에게 나무를 보라고 가르쳤다. 나무는 자체로 완성품이며 사람에게 안도감을 준다. 언제 보아도 같은 나무 같지만, 때마다 새롭다. 비가 , 눈이 , 바람이 더욱 그렇다. 강과 산과 물도 마찬가지다.

나무를 보라 외치던 선생님을 장산골 산마루의 아이들은 참으로 행복한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

2학년 아이는 쥐를 보며 "먹을 것을 살짝살짝 가져간다. 그러다가 쥐약 먹고 죽는다" 썼다. 짧은 줄이지만 아이의 예리한 관찰력과 유머가 그대로 살아 있다. 다른 아이는 거미줄에 맺힌 이슬을 바라보며 "가만히 들어 보면 음악이 들릴까" 하고 묻는다. 어른들에게 세상은 얽히고설킨 거미줄일 뿐이지만, 아이에게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악보가 된다. 어떤 아이는 꽃이 나비를 잡아 준다는 예쁜 상상을 펼치기도 한다. 아이들의 시에는 논리보다 상상이 먼저이고, 상상 속에서 세상은 한층 따뜻해진다.

어린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의사가 되었을까, 과학자가 되었을까, 혹은 정치인이 되었을까. 아니면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이제는 손주를 돌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한때 시를 쓰던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김용택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단순히 작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을 길러 주었다.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를 사랑했듯, 역시 아이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마음속에 시의 씨앗을 심었다. 씨앗은 년을 살아갈 아이들의 속에서 풍성한 감수성이 되고, 따뜻한 마음이 되며, 누군가를 이해하는 부드러운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의 평생을 바친 삶은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