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장미 한송이
Dr. Young B. Lee
8/4/20261 분 읽기
몸은 단백질과 탄수화물로 살아가지만, 영혼은 의미로 살고 아름다움으로 숨 쉬며 사랑으로 자라고 그리움으로 깊어진다
장미 정원을 가꾸며 홀로 사는 한 할머니가 있었다.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상담실을 찾았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의사는 약 처방 대신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교회에 가는 날, 정원의 장미를 꺾어 젊은 엄마들에게 한 송이씩 나누어주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실망했다. 새로운 약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의사의 말을 따랐다. 장미를 건네받으며 환하게 웃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젊은 여인들의 모습에 그의 마음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몇 주가 지나자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꽃을 나누었고, 기뻐하는 얼굴들을 보며 자신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석 달 후 다시 만난 의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할머니의 입에서 “외롭다”는 말은 사라졌고, 얼굴과 몸짓에는 잔잔한 평안이 깃들어 있었다.
자기를 잊고 타인을 향할 때, 외로움은 스스로 설 자리를 잃는다.
과학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대, 우리의 삶은 편리해졌지만 외로움은 오히려 깊어졌다. ‘혼밥’, ‘혼술’이라는 말이 일상이 되었고, 영국에서는 외로움을 전담하는 장관이 등장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더욱이 우리가 사는 이 노인 공동체에서 외로움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현실이다. 연구에 따르면 중·노년층의 상당수가 외로움을 경험하며, 이는 치매와 심장 질환, 우울증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외로움은 더 이상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과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몸을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작은 인사를 건네는 일. 때로는 신앙이 우리를 붙들어 주고,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 다시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의 중심에는 결국 하나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이다.
인간에게는 육신을 위한 양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채워진 후에는, 영혼을 지탱할 또 다른 양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외로움이란 어쩌면 그 영혼의 양식이 결핍된 상태를 말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으로 몸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영혼은 무엇으로 자라는가.?
사랑, 친절, 용서, 공감, 나눔, 연대, 봉사, 기쁨, 겸손….
이 보이지 않는 영양소들이야말로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의 품에서 그것을 받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스스로 길어 올려야 한다.
자기 안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밖으로 돌릴 때, 인간은 비로소 성장한다. 타인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고, 타인의 아픔에 마음을 내어줄 때, 우리는 깊은 연결 속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한다.
내 영혼을 돌본다는 것은, 나의 외로움만을 바라보던 눈을 들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다.
장미밭의 할머니가 나누어준 한 송이의 꽃은
결국 타인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
자기 영혼을 살리는 일용할 양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