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릴수 있다
작은 문을 조용히 열어두기.
Dr. Young B. Lee
8/4/20261 분 읽기
스웨덴 출신의 승려이자 방송인이었던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세상을 떠나기 전 우리에게 한 권의 책을 남겼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그의 삶의 결론이기도 했던 『내가 틀릴 수 있다』입니다.
스물여섯 살의 비욘은 남부러울 것 없는 직장을 내려놓고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 캄보디아의 외딴 대나무 숲 암자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14년 동안 오직 수행의 길을 걸었습니다.
오랜 수행 끝에 만행을 떠나는 길, 한 신문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스님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이야기가 너무도 신선하고 큰 감동을 주어, 나는 대학교 후배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준 일이 있습니다. 14년의 고행 끝에 얻은 깨달음이 겨우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고 말을 하자, 후배는 픽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거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왜 14년이나 고생을 했대요? 난 고등학교 졸업할 때 이미 다 배운 내용인데요.”
후배의 말을 듣고 순간 멍해졌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머리로 배운 사람과 가슴으로 배운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머리로 배운 사람'과 '14년 동안 숲속에서 자신을 깎아 가며 가슴으로 배운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두 사람은 똑같은 말을 했지만, 그 말의 무게는 땅과 하늘만큼 달랐다. 하나는 지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존재가 된 진실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머리로는 압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언제든 실수할 수 있고, 내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어떻습니까? 특별히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 직장에서,혹은 부부 관계에서 상대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그건 아니지" 하며 상대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일은 없었는지요.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을 마주할 때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한 자각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곤 합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과, 내 안의 거대한 고집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것을 온전히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스님이 보낸 14년은 이 당연한 상식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온몸의 세포로 내려놓는 ‘자기 부정’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젊은 시절 신앙을 만나면서 삶의 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은 편안했고 세상은 모든것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고, 부모님은 달라진 나를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불평 많던 청년은 남을 돕고 순종하려는 사람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이 곧 내가 언제나 옳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오히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고 믿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판단까지 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그때부터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판단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나 역시 그러했습니다.오랫동안 일상 생활에서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왔던 것입니다.믿음이 있다는 것이 곧 내가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높이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비우고 남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지식을 더 많이 얻는 일이 아니라, '나는 이미 옳다'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는 일입니다. 진리는 쌓아 올리는 것보다 비워 내는 데서 더 가까워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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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슴속에 이 한 문장을 품고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누군가와 갈등이 생길 때,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내 주장을 관철시키고 싶을 때 잠시 숨을 고르고 속으로 외쳐보는 것입니다. “잠깐,나도 틀릴 수 있어.” 이 한마디가 우리 삶에 자리 잡는다면 오만은 겸손으로, 분노는 이해로, 갈등은 대화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이것이 문명인의 길이 아닌가요?
오늘 밤,거울 속의 나에게 조용히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나는 정말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가.
이제 나도 그 문장을 마음속에 깊이 품고 살아가려 합니다. 백 번, 천 번 내가 옳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작은 문 하나는 슬그머니 열어 두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혹시 그 문 너머에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눈부신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작은 문 하나는 슬그머니 열어 두면서
